이승엽 선수와 염경엽 선수, 그리고 염경엽 감독과 이승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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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쓴 글

이승엽 선수와 염경엽 선수, 그리고 염경엽 감독과 이승엽 감독

by 숲의새 2022. 11. 8.

같은 구장을 사용하는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2023년도에 일하게 된 이승엽과 염경엽에 대해 살펴봅니다. 어느 감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요?

이승엽 감독과 염경엽 감독
이승엽 감독과 염경엽 감독 (출처 : 뉴스1/2022년 11월 8일)

1. 염경엽이승엽의 경력 비교

구분 염경엽 이승엽 비고
참여 경기 -10시즌
-896게임

-23 시즌 (KBO 15+NPB 8)
-2,703게임 (KBO1,906+NPB797)
 
타격 성적 -통산타율 0.195
-주로 대수비, 대주자로 기용
-통산 홈런 5개
-타율 0.290(KBO 0.302+NPB 0.257)
-626홈런 (KBO 467+NPB159)
-1,937타점 (KBO1,498+NPB439)
 
지도자 경력 -넥센 히어로즈 감독
-SK 와이번스 감독
-SK 와이번스 단장
-현대유니콘스/LG에서 프런트생활

없음  
나이 1968년생 (54세) 1976년생(46세)  
학력 광주일고, 고려대 경북고, 영남대  

 

2. 선수로서 실패하고 지도자로 나선 염경엽

2.1 캐나다 이민을 시도한 염경엽

염경엽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지도자 연수도 받을 겸 단풍나무 배트를 한국에 수출하는 사업을 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민 신청을 할 때 야구코치가 아닌 사업가로 기재해 캐나다 대사관에서 이민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이민을 가려던 계획이 무산된 후 "2년만 일하면 코치를 시켜 주겠다."는 말에 현대 구단의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나무 위키)

염경엽 선수의 10시즌 동안의 통산 기록 (1991년~2000년)
염경엽 선수의 10시즌 동안의 통산 기록 (1991년~2000년) [출처 : 위키백과]

2.2 현대 프런트 직원으로 일 시작해 LG로 옮겨

그는 현대 시절, 매니저를 거쳐 스카우트로 일했는데 뛰어난 자질을 보였습니다.
2007년에 히어로즈가 현대를 인수하자 사표를 내고는 LG 트윈스 프런트로 옮겨 2008년에는 대체 용병으로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스카우트했고 그 해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오지환, 정주현을, 신고선수로는 채은성을 뽑았습니다.

2009년에는 운영팀장으로 일하면서 박종훈 1군 감독, 김기태 2군 감독과 여러 코치들을 선임하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염경엽 감독 (출처 : 나무위키)
염경엽 감독 (출처 : 나무위키)

2.3 넥센으로 이직해서 감독 취임

2011년 12월에 넥센 히어로즈 작전/주루코치로 영입됐고 2012년 10월, 김시진의 후임으로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됐습니다.

넥센 히어로즈는 2012년 팀 창단이래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두산 베어스에 2승 3패로 졌고, 2014년에는 첫 플레이오프에 직행, LG 트윈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삼성 라이온즈에게 2승 4패로 밀려 준우승을 했습니다.

2015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1승 3패로 패했고 2016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탈락한 후 장정석에게 감독직을 물려주었습니다.

2.4 SK 와이번스 단장과 감독직 수행과 사퇴

2017년 1월에 민경삼 단장 후임으로 취임해서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고, 트레이 힐만 감독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2018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2019년 시즌 중에는 좋은 흐름으로 갔으나 두산 베어스에게 따라 잡히고 넥센 히어로즈에게 패하고는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20년 6월 25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도중에 실신한 후 복귀했으나 결국 2020년 10월 30일, 감독직에서 물러 났습니다.

2.5 KBS N 스포츠 해설 위원

2022년부터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일해 왔습니다.

3. 이승엽

3.1 누구나 다 아는 이승엽

그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야구를 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 후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다시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로 뛰다가 은퇴를 했습니다.

7년 연속 30 홈런에 9년 동안 평균 홈런이 36개일 정도로 뛰어납니다.

일본에서는 2 시즌을 빼고는 그리 기억에 남는 시즌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3.2 처음엔 투수였던 이승엽

경상중학교 시절에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시절에는 청룡기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한 투수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에도 투수로 입단했으나 경북고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훈련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타격 코치가 타자로 전향시켜 양준혁 대신 이승엽을 1루수로 기용했습니다.
1995년, 이승엽은 타자로서의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3.3 타자로서 성공한 이승엽

1996년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던 이승엽은 1997년부터는 장타에 눈을 떠 홈런 제조기로서의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126 경기에 출전해 3할 2푼 9리의 타율과 32 홈런, 114타점을 달성해 특급 타자가 되었습니다. (3할/30 홈런/100타점)

1998년도에는 38개의 홈런, 1999년, 54개의 홈런을 쳤으나 2000년도에는 36개로 줄어들었고 타율도 전년도 0.329에서 0.293으로 떨어져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2001년도에 39개, 2002도에 47개, 2003년도 56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2003년도 56개의 홈런은 한국 프로야구 및 동양인 최다 홈런 기록이었습니다.

3.4 600 홈런 달성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400 홈런을 달성한 후,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 600 홈런을 쳤습니다. (한일 통산)
그는 통산 626홈런을 쳤습니다.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16년 9월 21일)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16년 9월 21일)

4. 야구 선수로서는 너무나 다른 두 사람

야구 선수로서는 염경엽은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고, 이승엽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승엽 자신에게 물으면 자신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하겠지만 평범한 우리들이 볼 때는 그는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양지에서만 생활해온 선수입니다.

염경엽은 선수로서는 대주자와 대수비로만 뛸 정도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5. 실패의 경험과 가치

5.1 실패를 해 본 자만이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실패를 해 봐야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조심할 줄 알며,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며 선입견과 아집을 내려놓을 줄 압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선수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팀을 추스르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만들 줄 압니다.

쇠를 용광로에 넣어 두들기면 강한 강철이 되며 나무를 오랫동안 바닷물에 담근 후에 귀한 목재로 쓰는 것과 같습니다.

5.2 우리가 인생에서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선배들의 경험을 높이 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반성을 치열하게 했을 것
○또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예전보다 더 겸손해졌을 것
○그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그의 지혜가 더 넓고 깊어졌을 것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확대되어 많은 인간을 수용할 것

6. LG 트윈스가 밝힌 염경엽 감독 선임 이유

6.1 LG 김인식 대표는 염경엽에게 감독직을 제의하면서 "포스트 시즌 실패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실패를 반복 안 하실 분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염감독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연수를 갔을 때 혼자서 내 야구 인생 32년을 되돌아봤다. 내 매뉴얼을 다시 보면서 실패한 부분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SK 때는 내 욕심에 내가 너무 급했다"라고 했습니다.

6.2 LG팬들 중에서 왜 염감독을 선임했느냐고 불평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잘 선임했다고 판단됩니다.

그는 지도자로서의 경험도 많지만 야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이론으로 무장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야구 해설을 들으면 다른 해설 위원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를 하는 걸 자주 듣습니다.

염감독은 LG 트윈스가 현재의 전력대로만 유지해도 2년 안에 우승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6.3 염감독은 생각이 너무 많은 점만 고치면 좋겠습니다.
프로야구는 전쟁입니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염감독이 약해 보입니다.

2013년도에 두산 베어스는 정규시즌 4위를 했으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이겨 3승 1패로 앞서 있다가 내리져서 결국 3승 4패로 준우승을 했습니다.
당시 준우승을 한 김진욱 감독을 경질한 이유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송일수 2군 감독을 1군 감독으로 임명해 결과적으로는 2014년 두산 베어스 야구를 망쳤지만 저는 그 때 김진욱 감독을 잘 경질했다고 생각합니다.

7. 실패해 보지 않은 이승엽 감독

7. 1 이승엽은 야구선수로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늘 좋은 환경에서 성공만 하면서 선수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왜 두산 베어스 구단주가 이승엽을 감독으로 선임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2023년도 1년이면 이승엽을 채용한 것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승엽은 프런트에서 일해 보지도 않았고, 코치로 일한 경험도 없어 프런트 및 선수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융합해 나아가야 할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이 점도 걱정됩니다.

수석코치나 투수코치, 타격코치 등을 잘 선임하면 그 약점이 조금은 보완되겠으나 결국 모든 결정은 감독이 혼자 해야 하므로 감독이 중요합니다.

7.2 모든 구단은 현장의 모든 업무와 구단의 사정, 프런트 업무능력 등을 아는 노련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의지와 신념을 지닌 인간이 필요하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냉혈한이기도 하지만 투수의 어깨를 걱정하고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선수를 따스하게 품어줄 줄 아는 인간적인 자질을 갖춘 감독이 필요합니다.

이승엽 감독은 이런 점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저의 걱정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랍니다.

미란다 부상에 대해 적시에 대처하지 못한 점, 김재환/양석환/정수빈 등, 주전 선수 부진에 대해 대응하지 못한 점, 정규시즌 9위에 그친 점 등을 문책하여 김태형 감독을 경질한 것은 잘하였으나 이승엽을 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걱정이 앞섭니다.

이승엽 감독은 자신의 장점은 살리고 사람들이 우려하는 단점이 나타나지 않게 해서 두산 베어스에서 좋은 감독으로 인정을 받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두산 베어스 팬입니다.

7.3 선동열도 선수로서는 화려하게 성공하였지만 감독으로 선임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7.4 같은 맥락에서 삼성 라이온즈에서 이승엽을 감독으로 선임하지 않은 것은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7.5 실패를 안 해본 레전드 감독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이 항상 옳다고 고집을 부리고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그것도 못하느냐고 다그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이해한다는 영어로는 understand입니다.
under+stand인데 아래로 내려가 그 사람 입장에서 설 줄 알아야 사람을 따르게 하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7.6 더스티 베이커 감독

73세의 휴스턴 애스트로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MLB 흑인 사령탑으로는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으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습니다.
2002년 샌프란시스코, 2021년 휴스턴 감독으로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2022년에는 성공했습니다.
구단은 73세의 노인이지만 1년 더 연장 계약을 했습니다.

73세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 (출처 : 중앙일보)
73세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 (출처 : 중앙일보)

베이커 감독은 선수들이 같이 뛰고 싶어하는 감독들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마이애미로 원정 경기를 갈 경우, 그곳 출신 투수를 선발로 내세우기 위해 투수 로테이션까지 변경하며 그곳에 사는 투수의 가족이 올 것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이런 감독을 누가 존경하지 않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승리를 위해 투수의 어깨가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는 감독이 우글거리는 우리나라 감독들과는 근본이 다른 분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