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이어령과 그의 딸 이민아, 그리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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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쓴 글

돌아가신 이어령과 그의 딸 이민아, 그리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와 하나님

by 숲의새 2022. 11. 19.

신의 존재를 외면하고 지적 작업에만 몰두해온 자신의 오만함과 무지함을 참회한 이어령은 어떻게 무신론자였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그에게 영향을 준 딸, 이민아의 삶과 이어령의 책과 시를 다시 봅니다.

생전의 이어령 교수
생전의 이어령 교수

1. 이어령

●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 소설가, 시인, 수필과 희곡까지 써낸 작가이자 기호학자인 이어령은 1934년 1월 충남 아산군 온양면 좌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 이민아(1959년-2012년)는 목사이자 변호사였으며 소설가 겸 정치인 김한길의 전 부인이었습니다.

이어령은 부여고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경기고 교사로 부임했다가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2017년에 암이 발견돼 2차례 수술을 받았고 2022년 2월 26일에 우주공간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89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항암치료를 거부했고 치료약을 일절 먹지 않았습니다.

● 그는 수많은 저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해 왔으며 그가 남긴 삶의 흔적과 여운이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 이어령은 2007년 7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2007년 10월 25일 방송된 CBS TV, '영화감독 이장호, 누군가를 만나다'에 나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 후 삶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과거 오류로만 보였던 성경이 지금은 구슬을 꿰듯 새롭게 읽힌다"라고 밝혔다.

세례를 받던 순간의 느낌을 묻자 "그동안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외로운 삶인가. 혼자 바들바들하면서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불쌍했다. 가장 사랑하는 내 딸도 얼마나 쓸쓸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바울이 아닌 도마이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도마도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고, 철저한 절망의 궁극에 이르면 욥처럼 영성의 소리를 듣게 된다"며 기독교에 귀의한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영성과 천국이 있는 문지방에서 지금까지 전력투구한 삶과 마지막 나를 던지는 처절한 도전 앞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세례 후 가장 크게 바뀐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예로 들며 "세례 받기 전까지 나는 토끼 인생이었다. 나는 잘났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거북이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고 얼마나 많은 것이 부족했었는지…. 인간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큰 변화다"라고 말했다. (출처 : 이일기의 평안 블로그  2018년 12월 9일)

● 먹을 것이 족하고 목을 적실 물이 넘쳐나도, 추위를 막아주는 단단한 벽이 있어도 어디엔가 나처럼 무거운 쌀자루를 내려놓고 빈방에 앉아 몰래 기도를 드리는 무신론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강한 체 오기를 부려도 누군가 옆에서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면 금시 울음을 터뜨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2. 이어령의 딸 이민아 

이어령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딸, 이민아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어령에게 믿음을 주셨지만 그녀가 이어령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민아는 1959년에 태어나 풍문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졸업한 수재입니다.

1981년 이화여대 졸업식장에서 이민아가 아버지 어어령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출처 : 동아일보 2022년 2월 27일)
1981년 이화여대 졸업식장에서 이민아가 아버지 어어령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출처 : 동아일보 2022년 2월 27일)

◆ 결혼과 이혼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이민아는 22세라는 어린 나이에 김한길 전 의원과 결혼을 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너는 아직 어리고 삶이라는 걸 아직 모른다는 부모님의 말에, 그녀는 사랑은 맡겨두었다가 필요할 때 찾아서 쓰는 은행의 예금통장이 아니라고 항변해 결혼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공부, 육아, 경제활동을 병행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김한길은 주유소에서 일하고 여기저기 알바를 뛰며 돈을 벌었습니다.

서로에게 지친 부부는 결혼 5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아버지 이어령에게 돌아와 무너져 내린 그녀를 따뜻하게 맞아준 아버지와 이민아는 처음으로 서로 간의 거리감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든  2011년에 (52세) 결혼과 이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을 첫사랑에서 찾았다고 착각했습니다........저는 결혼 당시 연애지상주의에 빠져 있었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랑이 식었는데 억지로 맞춰서 사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사랑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로스쿨 진학과 재혼

정신을 차린 이민아는 아이를 키우며 헤이스팅스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갑자기 전공을 바꾸어 로스쿨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학위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변호사 시험에도 한 번에 합격하여 좋은 법률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직장을 버리고 박봉의 지방검사가 됩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일했습니다.

좋은 미국인 남편을 만나 재혼도 했습니다.

◆ 갑상선암 진단

그러다가 1992년 청천벽력 같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수술은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습니다.
죽기 직전 상태에서 둘째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셋째를 임신했습니다. 이어령이 낳는 것을 반대했으나 넷째도 임신해서 낳았습니다.

◆ 둘째 아들 자폐증

유치원에 들어간 둘째 아들이 자폐증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열두 살이 되도록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거나 따르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겼고 중학교도 1년 다니다 쫓겨났습니다. 그녀는 직장과 큰 저택을 버리고 하와이로 이주하여 크리스천 스쿨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아이의 치료와 교육에 매달립니다. 다행히 큰 아들 자폐증은 1년이 흐르자 눈 녹듯이 나았습니다.

◆ 망막박리 진단과 실명 위험, 그리고 다시 백내장

이번에는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습니다. 망막이 약해진 상태에서 찢어지기 시작했고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고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어령은 실명 위기에 처한 이민아의 망막이 붙어서 장님만 되지 않는다면 제가 하나님을 위해 제 인생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와이의 한 작은 교회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서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도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7개월 뒤에 그녀의 찢어졌던 망막은 기적적으로 다시 붙어서 나았습니다.  

그 후에 큰 아들을 잃고 너무 많이 울어 눈에 백내장이 심해져서 렌즈를 껴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어령이 병원에 예약을 해 놓고 진찰을 받아 보자고 했으나 이민아 목사는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고치실 것이라 하면서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한 후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셔서 다음 날 아침에 아버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의사를 만나 진찰을 하고 치료받은 후에 나았습니다.
이민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자신이 생각하는 틀 안에 가두어 두는 실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령은  73세 때 딸의 생일날에 딸이 바라보는 가운데  2007년 7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어령은 세례를 받으며 "딸의 믿음이 나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딸이 치유받은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기적은 구제의 사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딸, 이민아는 아버지를 위해 1992년부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어령이 어느날 "내 주위가 왜 이렇게 다 크리스천이냐?"라고 했답니다.

아버지 이어령 교수가 세례 받은 후 인터뷰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이민아 목사 (출처 : CBS JOY)
아버지 이어령 교수가 세례 받은 후 2007년 10월 25일 CBS TV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이민아 목사 (출처 : CBS JOY)

◆ 큰 아들 사망

그 후에 이번에는 더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00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 재학 중이던 큰 아들 유진이 25세에 돌연사했습니다.  감기에 걸린듯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19일 만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생애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죽을 것 같은 진통 끝에 첫 아이를 낳아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고 2011년에 고백했습니다. 그 큰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3년을 울었다고 합니다.  왜 나한테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목사 안수

그렇게 매 순간을 울며, 신을 원망하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과 똑같이 아들을 잃은 분, 하나님을 만나서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를 얻습니다. 이렇게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2009년에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육체의 질병과 큰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민아의 인생이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에 매진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잃고, 세상의 아이들을 품은 것입니다.

◆ 위암 말기 판정과 사망

이번에는 위암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위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에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2012년  53세로 세상을 떴습니다.

◆ 이민아의 책 - 땅끝의 아이들

그녀의 10주기를 기념해 "땅끝의 아이들"(열림원)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땅끝의 아이들’은 이혼과 암 투병, 둘째 아이의 자폐와 실명 위기, 그리고 큰아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감당하기 힘든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神)이 준 소명을 위해 믿음으로 이겨낸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간증집입니다.

그녀는 책에서 말합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저를 사랑하셨지만 스킨십이나 안아주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유교 가정에서 자란 분이시고 점잖은 분이시니까 사랑 표현을 잘하지 못하셨어요. 아버지가 큰 팔로 저를 꼭 안아주시면 그 따뜻한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항상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어렸을 때 제가 시도를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안아달라고 아버지한테 몇 번 엉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귀찮게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몇 번 밀어내셨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것이 평생 동안 저를 공격하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아이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부모님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깨어지면서 성령 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되는 첫 번째 의무가 부모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망가지고 깨지고, 그래서 아주 산산조각이 난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사랑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제가 그중의 하나였듯이.”

딸의 이 고백이 이어령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 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이어령은 시집에 실린 "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
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 하지만
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데
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

네가 울 때 나는 웃고 있었나 보다
아니지 널 위해 함께 눈물 흘려도
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랴
네가 금 간 천장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바깥세상 그 많은 색깔들을 보고 있구나

금을 긋듯이 야위어가는 너의 얼굴
내려가는 체중계의 바늘을 보며
널 위해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글을 쓴다

힘줄이 없는 시
정맥만 보이는 시를
오늘도 쓴다
차라리 언어가 너의 고통을 멈추는
수면제였으면 좋겠다

민아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

3.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이어령은 회한으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책을 냅니다. (2015년)
그의 딸 이민아가 어릴 때 아빠가 해 주기를 기대하던 굿나잇 키스를 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이어령은 그 책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울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게지.
길가의 돌은 거기 있고
풀들은 가을이 오기 전까지 푸르지

울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가는 거야.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삐 사라지는 것들은 뒤통수만 보여

그러니 울지 마.
조금 있으면 구름도 안 보이고
바람도 불지 않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벌판에는 아무것도 없지

그때 지붕 위로 내리던 비
타다 만 휴지 조각

생각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없었던 것.
울지 마 그냥 가게 두는 거야.

4. 눈물 한 방울

책 '눈물 한 방울'
책 '눈물 한 방울'

그가 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이 가까워 옴을 안 그는 키보드 두드리기도 힘들어 육필로 글은 썼고 그 글들을 모아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쓴 글쟁이였습니다.
그는 160여 권의 책을 썼습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이제 인간은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걸린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눈물이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눈물 한 방울)

'큰 욕심, 엄청난 것 탐하지 않고 그저 새벽바람에도 심호흡하고 감사해하는 저 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거기에 제 눈물도요. 그들은 눈물이라도 솔직히 흘릴 줄 알지만, 저는 눈물이 부끄러워 울지도 못해요.' (마지막 수업)

5.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과 2,  시 두 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개정증보판) 2010년 11월 12일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개정증보판) 2010년 11월 12일

그의 시집에 실린 표제작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쓰게 된 것도 딸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딸 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긴 전화였다.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 그 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믿지 않던 신의 은총을 생각한다. 무슨 힘이 민아를 저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 애가 그 아픈 병에서 나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언어밖에는 없다. 내가 하나님과 비록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그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가 있다. 그래서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썼다." (그가 시 밑에 이렇게 썼습니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사진 : Aaron Burden
사진 : Aaron Burden

♤아래는 약간 다른 버전입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1)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 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고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 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6.  탕자의 노래

내가 지금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진실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멀리 떠나고 있는 까닭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사랑을 알고 진실을 배우고
아름다움은 보았지만
나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작은 집이 방황의 길 끝에 있습니다
날 위해 노래를 불러줘요 집으로 갈 수 있게
믿음의 빛을 주어요
개미구멍만 한 내 집이 있기에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7. 컵, 육체, 죽음, 영성

이어령이 조선비즈 김지수 문화전문기자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2022년 1월 1일)

"여기 컵이 있죠? 이게 육체예요. 죽음이 뭔가? 이 컵이 깨지는 거예요. 유리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 내 몸이 깨지는 거죠.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져요.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져. 안 사라지는 건?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에요. 비어 있던 컵의 공간, 그게 은하수까지 닿는 스피릿, 영성이에요.”

영성은 가지고 태어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럼요. 원래 컵은 비어 있잖아. 거기에 뜨거운 물 담기고 차가운 물 담기는 거죠.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의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게 스피릿이에요.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 그래서 한국 사람들, 죽으면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이어령 교수 영정
이어령 교수 영정


참고자료

1. 이어령 유일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이어령의 책들
3. 유튜브 이민아의 간증들 (CBS, CTS)
4. 이어령과 이민아 (에세이스트 정민교, 2021년 10월 8일)
5. 이어령의 딸, 이민아의 한 많은 삶 (몬트리올 한인교회, 2013년 12월 30일)
6. 조선비즈 기사 (2022년 1월 1일)